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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그리고 글

사자성어_가인박명_'허난설헌'

by 오카시아 2025.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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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난설헌'  >>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 ~ 1589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자, 조선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여류 문인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시는 중국까지 전해질 정도로 뛰어났으며, ‘가인박명(佳人薄命)’의 전형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 허난설헌의 생애

본명과 호

  • 본명: 허초희(許楚姬)
  • 호: 난설헌(蘭雪軒) – '난초와 눈이 머무는 뜰'이라는 뜻
  • 자(字): 경번(景樊)

🌼 가문과 성장

  • 허난설헌은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버지 허엽은 동인계 명신, 오빠 허균은 조선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를 보였고, 한시(漢詩)를 자유자재로 썼습니다.

그녀는 여인이었지만, 오빠 허균조차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과거에
장원급제했을 인물"이라 평했습니다.


💔 결혼과 비극

  • 15세에 강릉의 기호학파 학자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무관심과 시댁의 냉대 속에서 외로움을 겪었습니다.
  • 친정에서는 천재로 찬사를 받았지만, 시댁에서는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부녀자는 바느질이나 잘하면 되지,
무슨 시를 쓰냐”는 분위기 속에,
그녀는 내면에 갇힌 채 살아갔습니다.


🥀 상실과 요절

  • 두 자녀를 모두 일찍 잃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 이 후유증으로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 죽기 전 오빠에게 부탁합니다:
  • "내가 죽거든, 내가 남긴 시를 불태우지 말고 중국에 보내라."

오빠 허균은 여동생의 유지를 지켜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출간했고,
그 시집은 명나라에까지 전해져 극찬을 받았습니다.


📖 대표작

⟪제망매가(祭亡妹歌)⟫ – 죽은 여동생을 그리며

서러운 마음을 어이하리,
백설 같은 얼굴이 흙에 묻히고 말았구나…

⟪규원(閨怨)⟫ – 여성의 억눌린 삶을 노래

소녀는 시집와서 하루 종일 자물쇠나 지키네
봄바람 불어도 꽃구경 갈 수 없구나…


🕊️ 허난설헌의 의미

  •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지식과 문학은 억눌렸지만, 그녀는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탁월한 시 세계를 펼친 여성 지성의 상징이며,
  • 그녀의 시는 지금도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고, 강릉에는 난설헌 생가가 보존돼 있습니다.

📜 요약

항목내용
본명 허초희
난설헌(蘭雪軒)
생몰년 1563년 ~ 1589년
특징 조선 최고의 여성 시인, 요절, 천재적인 문재
대표작 《규원》, 《제망매가》, 《봉선화》 등

 

 

 

 

 

허난설헌의 일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삶은 짧았지만, 많은 감동적인 일화들이 전해집니다. 그녀의 일화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속에서 문학적 천재성을 드러낸 이야기, 그리고 비극적인 생애의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아래에 대표적인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 1. 어린 시절, 벼루 물을 마시던 천재

허난설헌이 어릴 적, 아버지 허엽은 유학자들과 종종 학문을 토론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학자들이 그녀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벼루에 고인 먹물을 마신다더니,
책벌레인가 봅니다.”

 

그러자 허난설헌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먹물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은 배웠습니다.”

 

그녀는 겨우 7세였지만, 한시를 지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고,
아버지는 “이 아이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장원이 되었을 것”이라 했습니다.


🍂 2. 결혼 후에도 시를 쓰다 핀잔을 듣다

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이라는 유학자와 결혼했지만, 시댁에서는 그녀의 문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눈이 온다, 바람도 없이 소리 없이 흩날리는구나.”

그 시를 본 시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여자가 어찌 시를 쓴단 말이냐. 부덕하지 못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자신의 시를 몰래, 혹은 밤에 등불을 켜고 써야 했습니다.


💔 3. 자식을 잃고 지은 시 — 죽은 아들을 그리며

허난설헌은 아들과 딸을 일찍 잃습니다. 특히 아들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는데,
그녀는 **자식을 위한 제문(祭文)**을 지으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전해집니다.

“너의 웃음소리가 아직 내 귓가에 맴도는데,
왜 너는 나보다 먼저 가는 것이냐…”

 

그녀의 시에는 당시 여성들이 표현하지 못하던 모성의 깊은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4. 죽기 전 남긴 유언

26세, 병으로 죽음을 앞둔 그녀는 오빠 허균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했습니다.

“오라버니,
내가 죽거든 내 시를 불태우지 말고,
중국에 보내 주십시오.
이 조선 땅은 여자의 글을 인정하지 않을 테니…”

 

오빠 허균은 이 유언을 지켜, 그녀의 시를 엮은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중국에 보냈고,
그 시집은 명나라에서 극찬을 받으며 널리 퍼졌습니다.


📜 그녀의 일화가 주는 의미

허난설헌의 일화는 단지 ‘여성 시인’의 삶이 아니라,
제약된 시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남들이 말리는 글을 썼고, 금기 속에서 사랑을 말했으며,
삶의 가장 깊은 상실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허난설헌의 단편소설

 

 

 

 

📚 단편소설: 《벼루 위에 핀 꽃》


1. 검은 물의 아이

아침 해가 벽 너머로 들이치던 날,
허초희는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벼루 위의 먹빛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물을 찍어 입에 가져가고, 또 찍어 눈썹 끝에 문질렀다.
언니가 놀라며 외쳤다.

“초희야, 또 먹으로 장난치니?”

초희는 웃지 않았다.
“이건 장난이 아니에요. 이건… 생각이에요.”

그녀는 먹의 냄새가 좋았다. 차갑고 묵직한 그것은,
마치 아직 말하지 못한 말들의 향기 같았다.

 

 

>> 초희의 생각

나는 기억한다.
내 손보다 더 컸던 벼루 위, 검고 고요한 물결을.
어른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저 아이는 벼루의 물을 마시는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반짝했다.
먹빛은 어딘가 따뜻했고,
그 속에는 말로 하지 못한 생각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말이 아닌 글로 세상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 혼례, 붉은 발걸음

열다섯.
비단으로 된 연지곤지를 얼굴에 찍고, 비단 치마가 발끝을 감싸고, 혼례복이 등줄기를 조였다.
아버지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은 채 초희는 강릉 김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마지막으로 잡고 속삭였다.
“아버지, 저는 시를 계속 써도 될까요?”

아버지는 내 눈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초희야, 네 시는 너의 숨이란다.
숨을 멈추지 말거라.”

하지만 그 말은 시댁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마땅한 일만 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들에게 조용히 인사하고,
밤마다 등잔불을 켜고 몰래 글을 썼다.
종이 위에서만, 나는 나였다.

 

밤,
남편은 책만 읽고 있었고, 그녀는 작은 등잔불 옆에서 시를 적었다.

“눈이 온다, 바람도 없이 소리 없이 흩날리는구나.”

하지만 다음 날, 그 시는 시아버지 손에 들려 있었다.

“이런 글을 짓다니… 부덕하구나. 다시는 붓을 잡지 마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밤마다 등잔불을 약하게 켜고, 마음으로 글을 썼다.

 


3. 잃어버린 이름들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들이 먼저 죽었고, 딸도 곧 뒤따랐다.

 

내 아이가 죽었다.
작은 손이 내 손을 붙잡지 못하고,
그대로 식어갔다.

 

그녀는 붓을 들었다.
죽은 자식을 위한 제문은 종이 위에 흐느끼듯 쓰여졌다.

“너의 이름을 부르려다, 그 이름마저 흩어질까 두렵다.”

시댁에서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초희는 알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을.

 

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시를 적었다.

 

“네가 내 품에 있었던 시간이

꿈이었던 것만 같다.”

 

남편은 조용했고,
집안은 더 이상 내 슬픔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아이의 이름을 종이 위에 백 번 넘게 썼다.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도록.



 


4. 벼루 위의 마지막 시

스물여섯의 봄.
몸이 천천히 식어갈 때, 내 몸은 천천히 안으로 꺾이고 있었다.
나는 오라버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초희야,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

그녀는 마지막으로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제가 쓴 것들을 태우지 말고, 부디 바다 건너에 보내 주세요.
여긴, 제가 남을 자리가 아니니까요. 중국에 보내 주세요.
조선은 저를 기억하지 않을 테니까요.”

오라버니는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그 손을 의지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그녀가 지은 시처럼.


5. 백 년 뒤

'나는 죽었고
내 이름은 오래도록 잊혔다.

하지만 누군가 내 시를 펼치고
작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나는 허초희.
벼루의 물을 마시던 아이.
세상의 틈에서 시를 써 내려가던 여자.
그리고 지금도 종이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이다.'

 

허균은 유언을 지켜 그녀의 시를 모아 **『난설헌집』**을 엮었다.
그리고 시는 명나라에서 찬란히 빛났다.

어느 중국 시인은 적었다.

“그녀는 조선 땅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달빛 아래 시의 나라에서 내려온 이다.”


📜 작가의 말

허난설헌의 삶은 슬픔의 궤적이자,
_말하지 못한 여성의 시대가 남긴 가장 조용한 울림_이었습니다.
그녀는 죽었지만, 시는 살아 있습니다.
벼루 위에 핀 꽃은, 그리 쉽게 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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